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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형사/마광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과 마광수의 '귀족'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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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마광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과 마광수의 '귀족'에 대한 리뷰.


(사진 출처 : http://sam2010.tistory.com/401)


몇 년 전에 학부 교양 수업으로 '문학 입문'을 들은 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도 만족스러웠고, 그 콘텐츠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딱 한가지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있다면 바로 법조인에 대한 교수님의 시선이었다.

물론 문학인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교수님께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의 예시를 자주 들으시며

과연 법조인이 예술의 영역에 대한 판단이 가능한가에 관해 자주 묻곤 하셨다.


그 질문의 대상은 당연히 교실 내의 몇 안되는 법학과 학생들이었고, 나는 당연히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변 상황과 종합하여 보았을 때

외설적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령 명화(名畵) 속 여성의 나체는

예술로서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이 분명하지만, 

만약 그것을 성냥갑 등에 인쇄하여 판매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외설이 될 수 있습니다.(실제 부산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나체의 마야' 사건)

따라서 그러한 제반 사정 등을 판단하여 외술과 예술을 판단하는 작업은 분명히 필요하고

그 대상이 글로된 문학작품이라고 하여도 이러한 원칙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고야의 작품 '나체의 마야' The Naked Maja )


라고 말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학점에 후환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위와 같은 내 생각에 대해 '문학인'은 어떻게 답변을 하는 지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천금과 같은 기회를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업 내내 이러한 속마음을 품고 있다가 어느날 교수님께 의견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수업의 중간 과제로 4페이지 정도의 독후감을 제출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이 바로 '마광수' 교수였고 '즐거운 사라'라는 책이었다.

예술의 자유와 법원칙의 충돌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분이 바로 마광수 교수이고 

그를 대표하는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즐거운 사라'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책 '즐거운 사라'로 인해 연세대학교에서 수업 도중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 책 내용이 너무나도 외설스럽기에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난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본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찾아보니 놀랍게도 외설스러운 소설로 인해 저자를 구속한 것은

당시 세계에서 최초인 사례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기록은 아직까지 유효할 듯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 즈음에 이른바 '예술'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한창 활발했던 것 같다.

만화책 '천국의 신화'(친구들이 학교에 가져왔었는데, 늑대와 부족민의 수간 장면이 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린 시절 꽤 충격이었고 그쯤 되는 수위라면 확실히 규제 대상이 될만 하구나라고 생각 했었다.)라던가,

영화 '거짓말'(남선생과 여학생의 불륜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 혹은

영화 '죽어도 좋아'(두 노인의 성생활을 그린 영화라고 알고 있는데 이 또한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처럼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시선 간에 대한 논의가 꽤 활발하게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대법원까지 가는 법적 공방 끝에 

결국 '음란한 문서'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고, 마광수 교수는 '음화 등의 반포 죄'의 유죄로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게 되었으며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자세한 판결 전문에 대해서는 아래에 수록하도록 하겠다.)


비록 그 형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사면이 이루어졌지만,

판매금지 처분은 현재까지도 유효하기에 나는 문학 입문 독후감 교재로서 '즐거운 사라'를 선택할 수 없었고,

결국 마광수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 때 눈에 들어왔던 책이 바로 '귀족'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즐거운 사라에 대한 독후감을 쓰며 어떠어떠한 논리 전개를 해야겠다는 

대강의 구조를 생각해 놓은 상태에서 다른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은 매우 의욕이 떨어지는 일이었기에, 

학교 도서관에 소장 된 마광수 저 책 중 가장 얇은 것을 고른 것이다.


'귀족'은 역시 마광수라는 생각이 들만큼 정말로 야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야설'과 마광수의 '예술'에 차이를 꼽자면

야설의 주목적이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성적 욕구를 끓어 오르게 하는 것인 반면

마광수의 예술은 성적인 텍스트를 통해 이면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에 있었다.


'귀족'의 경우 내면에선 사회구조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 장치로서 '음란함'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글을 읽은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외설과 예술의 판단의 주체는 결국 법관이다.

아무리 사회통념 및 여러 제반사정을 고려한다하여도 그러한 것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은 법관인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이러한 법관의 결정이 때로는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러한 작용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 싶다.

(즐거운 사라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그에 대한 판결이 과연 '최소한'의 조치였는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아 글을 쓰다보니 몇 년 전에 읽은 책인만큼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고,

그 때 받은 감정을 잘 전달할 방법도 생각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냥 그 때 수업에 과제로 제출했던

마광수의 '귀족' 독후감을 첨부하도록 하겠다.

과거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운 점도 많고, 높은 학점을 받는 데에 목적이 있는 글인만큼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 인용이 지나치게 많기도 하지만 역시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일 듯 싶다.

꽤나 부끄러운 글이지만 책을 읽은 직후에 쓴 글인만큼 그때의 감정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아무런 수정을 가하지 않고 그 자체를 수록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이하에서는 과거 문학입문 시간 과제로 제출했던 '귀족'의 독후감과

위에서 설명했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에 대한 판결 전문을 소개한다.





문 학 그 리 고 학 문

-마광수의 귀족을 읽고-

 

 

2007XXXXXX 김태룡

 

 

마광수와 김태룡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으로 서둘러 담배를 물었다. 줄담배로 3개피를 핀 후에야 정상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 , 커엉으로 끝나는 이 책의 마지막은, 작가가 그래 지금까지 니가 읽은 책은 모두 개소리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오묘함이었다.

 

  수업시간 중 교수님께서 법과 문학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있다. 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오로지 법에 대한 지식만이 있는 판사들이 문학작품의 외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한 불합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법을 전공하고 법조인의 꿈을 키우는 나로선 많은 생각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장차 나도 법관이 되어서 그러한 판단을 내릴 일이 있게 된다면 그에 합당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판결문에서 나오는 소위 외설적인 글을 한 번 쯤은 읽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일요일의 어느 개그프로그램에서도 그를 패러디한 개그맨이 등장할 만큼 사회적으로 굉장한 이슈가 되었던 작가인 마광수’. 그의 글을 읽을 기회는 이번이 아니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Frame에 대한 지식을 깨버려라. 말은 쉽지만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틀이 설정되어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며, 그 것이 깨져야 한다고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은 배울 학()을 쓴다. 즉 이는 교육의 대상이라는 것인데, 과연 외설적인 표현들과 일반적인 성관념에서도 벗어나는 마조히즘, 새디즘 등의 일상생활에선 입 밖에 꺼내기도 힘든 표현들만으로 가득 찬 글 또한 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문학에 대한 소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로선, 여러 유능한 문학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많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쉽사리 대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 보았을 때 문학의 이 아닌 에 집중해 본다면 이 책과 표현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전달성이 강하며 충분히 연구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작품에 대한 의미부여

 

  수업시간에 다룬 여러 문학 작품에서 발표조가 다루었던 전반적인 공통점을 뽑으라면 작품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것이었다. 그 것이 작가가 글을 쓰면서 정말로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사회반영적인 느낌은 분명히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에 나 또한 이 책에서 작가의 그런 태도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마광수라는 작가에 대한 평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연세대가 낳은 천재라는 수식어를 생각해 보았을 때 분명히 단순하게 외설을 쓰고 싶진 않았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1. 마광수의 언어

 

  이 책의 표현은 낯이 뜨거워지도록 너무나도 솔직하다. 우리 사회에선 흔히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이 책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령 페미니스트는 못생겼기에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예쁜 여자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그 누구도 함부로 뱉을 수가 없는 말이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도 한 씁쓸한생각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켜야할 이 존재한다. 수업시간에 말한 frame과 같은 의미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것을 깨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부담을 수반하곤 한다. 이 경우 위의 표현은 이러한 사회 종속적이고, 어느 정도의 가식을 수반해야만 하는 우리내 삶의 틀을 깨버린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런 표현은 분명 사회적으로 지탄 받았을 것이고 여러 비난의 초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 자체는 분명히 혁신적이다. 사회의 비난이라는 칼에 대항하는 작가의 펜은 그 결과를 떠나서 시도만으로도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비단 표현에서만 이런 직설적인 느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상경을 한 주인공이 너무나도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스트바에 들어가게 되고, 그 호스트바에는 창녀들이 자주 출입하였으며 그러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어느 잘나가는 사장님의 첩 생활을 하는 여자를 만게된다는 내용, 모두가 알고 있으나 문학 작품으로 접하기엔 꺼려지는 내용들이다. 이처럼 표현하기엔 불편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스토리 라인은 말그대로 혁신적이라는 느낌밖엔 들지 않는다. 마조히즘과 새디즘, 애널섹스와 같은 것들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나 누구나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들. 그러한 것들을 조목조목 꼬집어서 어느 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회비판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이처럼 불편한 진실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 귀족과 창녀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귀족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회의 지배층이자 지배층의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즉 작가가 말하는 귀족은 아름다운 외모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력을 갖춘 자를 의미한다. ‘귀족이란 단어가 실제로 쓰여진 유럽에선 그들에게 사회의 지도층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귀족은 그러한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태생적 한계는 존재한다고 하나)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는 가꿀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재력만이 귀족의 조건이 되는 것이 현대 우리 사회의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 속에 나왔던 귀족인 헤라의 실체는 잘나가는 사장님의 첩에 불과하다. 사회의 지도층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며 오히려 그러한 첩 생활은 우리 사회의 가장 최하층에 위치한 것이란 생각 또한 들기 마련이다. 즉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느 새인가 가짜들이 진짜를 가장하여 진짜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귀족에 대한 평가기준은 전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의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는 근래 우리 사회 20대 청년들 모두가 갖고 있는 기준과 그리 달라보이진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선물로는 만년필이 아닌 쌍꺼풀 수술이 가장 많고 소개팅의 기준은 어떤 차를 타고다니느냐이며 남자들은 생각과 사상의 크기가 아니라 근육의 크기만을 키워가는 우리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의 우리 모두의 귀족은 이 책의 주인공의 생각처럼 외모와 재력만으론 충분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TV 속의 소녀시대동방신기야 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진정한 귀족인 것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3. 손톱과 손톱깎이


  이 책에선 귀족의 외모재력두 가지를 동시에 나타내줄 수 있는 매개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며 헤라는 그의 정점에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손톱의 길이이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손톱을 기를 수 없으며, 손톱에 하는 여러 치장은 미의 상징이라는 주인공의 태도는, 그가 손톱에 대해 패티즘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보았을 때 손톱이라는 것은 길면 잘라내야 할 것에 불과하다. 손가락의 끝부분을 덮는 보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것이 기준을 넘었을 때에는 가차 없이 잘라내야만 하는 것이다. 본 책에서 긴 손톱은 곧 귀족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면, 손톱은 잘라내야 하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현대사회의 가짜귀족들 또한 잘라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모와 재력만으로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결정된다는 것은 매우 통탄할 일이고 근절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어느새 길어버린 손톱처럼 말이다.

 


글을 마치며

 

  ‘, , 커엉이라는 개소리로 끝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이 책에 대해 여러 평론가가 코멘트를 달아놓은 장문의 글들이 많이 보였다. 마광수의 책에 실린 글이니 분명히 이 책을 예찬한 여러 글들일 것이 분명했고, 일반인이 잘 알 수 없을 여러 현란한 표현들로만 가득찼을 것이 분명했기에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난 그냥 책을 덮어 버렸다.

 

  그들이 이 책에 대해 평가한 것과 내가 이 책에 대해 평가한 것은 분명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감상평보다는 나와 같은 일반인의 감상평이야 말로 이 책에 대해 사회가 내리는 진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내가 훗날 법관으로서 이 책을 다시 접하게 된다면 그 때는 사회의 일반인이자 대표자로서 이 책을 격렬히 옹호할 것이다. 분명 외설적인 표현과 노골적인 스토리라인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긴 하나 그러한 불쾌한 기분의 근원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마광수의 마수(魔手)에 빠져버린 것일 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는데 손발의 오그라듬을 멈출 수가 없다.

지워버릴까 하다가 이미 그 목적을 다한 텍스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는 기분이 들어

그냥 내버려두기로 정했다.


어쨌든 이제 '즐거운 사라' 사건이다.



대법원 1995.6.16. 선고 94도2413 판결

【음란한문서제조,음란한문서판매】 

[공1995.8.1.(997),2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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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사항】

가. 음란한 문서의 개념과 음란성의 판단기준

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한 문서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다.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와 형법 제243조, 제244조의 관계

라. 형법 제243조, 제244조의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지 여부


【판결요지】 

가. 형법 제243조의 음화등의반포등죄 및 형법 제244조의 음화등의제조등죄에 규정한 음란한 문서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키고, 문서의 음란성의 판단에 있어서는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 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 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 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문서를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의 여러 점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한 문서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다. 헌법 제22조 제1항, 제21조 제1항에서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도 헌법 제21조 제4항, 제37조 제2항에서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에 따라 형법에서는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243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판매한 자를, 제244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제조한 자를 각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문학작품이라고 하여 무한정의 표현의 자유를 누려 어떠한 성적 표현도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것이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형법규정에 의하여 이를 처벌할 수 있다. 


라. 일반적으로 법규는 그 규정의 문언에 표현력의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질상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고,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서 규정하는 “음란"은 평가적, 정서적 판단을 요하는 규범적 구성요건 요소이고, “음란"이란 개념이 일반 보통인의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으므로 이를 불명확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형법 제243조와 제244조의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참조조문】 

가.나.다.라. 형법 제243조 , 제244조 / 다. 헌법 제21조 제1항 , 제21조 제4항 , 제22조 제1항 , 제37조 제2항 / 라. 제12조 제1항 

【참조판례】 

가. 대법원 1975.12.9. 선고 74도976 판결(공1976,8901), 1995.2.10. 선고 94도2266 판결(공1995상,1367), 1995.6.16. 선고 94도434 판결(동지) 

【전 문】 

【피 고 인】 마광수 

【상 고 인 피고인】 변호인변호사 한승헌 

【원심판결】 서울형사지방법원 1994.7.13. 선고 93노446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본다(다만, 피고인이 제출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서제출기간이 경과된 이후에 제출된 것이므로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 본다).


1. 형법 제243조의 음화등의반포등죄 및 같은 법 제244조의 음화등의제조등죄에 규정한 음란한 문서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고, 문서의 음란성의 판단에 있어서는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문서를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의 여러 점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당원 1970.10.3.선고 70도1879 판결; 1975.12.9.선고 74도976 판결; 1995.2.10.선고 94도2266 판결 참조).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검토하여 보면, 이 사건 소설 “즐거운 사라"는 미대생인 여주인공 “사라"가 성에 대한 학습요구의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벌이는 자유분방하고 괴벽스러운 섹스행각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성희의 대상도 미술학원 선생, 처음 만난 유흥가 손님, 여중 동창생 및 그의 기둥서방, 친구의 약혼자, 동료 대학생 및 대학교수 등으로 여러 유형의 남녀를 포괄하고 있고, 그 성애의 장면도 자학적인 자위행위에서부터 동성연애, 그룹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카섹스, 비디오섹스 등 아주 다양하며, 그 묘사방법도 매우 적나라하고 장황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또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위 소설은 위와 같이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밖에 인정되지 아니하는바, 위와 같은 여러 점을 종합하여 고찰하여 볼 때 이 사건 소설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소론과 같이 오늘날 각종 영상 및 활자매체 등을 통하여 성적 표현이 대담, 솔직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성표현물이 방임되어 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하여도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그 한계는 분명하게 그어져야 하고 오늘날 개방된 추세에 비추어 보아도 이 사건 소설은 그 한계를 벗어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제1심 제2회 공판기일에서 검사작성의 신태웅, 김남규에 대한 각 진술조서에 대하여 피고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를 하였음이 명백하므로 이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니 이를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은 원심의 조치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소설을 음란문서라고 인정한 데에 소론과 같은 심리미진이나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 자유심증주의의 남용, 이유불비, 이유모순,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그리고 우리 나라 헌법은 그 제22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그 제21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각 규정하고 있어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한편 그 제21조 제4항에 “언론·출판은...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 제37조 제2항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각 규정하고 있으므로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도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 형법에서는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제243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판매한 자를, 그리고 그 제244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제조한 자를 각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문학작품이라고 하여 무한정의 표현의 자유를 누려 어떠한 성적 표현도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것이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위 각 형법규정에 의하여 이를 처벌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다른 견해에서 원심판결에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는 소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일반적으로 법규는 그 규정의 문언에 표현력의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질상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고,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서 규정하는 “음란"은 평가적, 정서적 판단을 요하는 규범적 구성요건 요소이고, “음란"이란 개념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를 불명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형법 제243조와 제244조의 규정 자체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심이 위와 같은 음란의 개념을 적용하여 이 사건 소설을 음란문서라고 판단하였다고 하여 원심판결에 소론과 같이 위 법조 소정의 음란문서의 해석을 잘못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논지는 모두 이유가 없다. 


4. 이에 상고를 기각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준서(재판장) 박만호(주심) 김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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