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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법대생의 대화',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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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생의 대화',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의 허와 실.


로스쿨 도입으로 '법대생'의 이미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비록 동국대, 홍익대 등 몇몇 우수한 대학교의 법학과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천하제일'이라는 서울대 법대를 필두로 하여,



그 특유의 색깔을 내며 대한민국 법조계의 한 축을 담당한 고려대 법대

이 외에도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중앙대, 경희대 등 

법학과의 명성이 어느정도 강한 학교들은 모두 법학과 폐지를 수반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과의 꽃이 의대였다면 문과의 꽃은 법대였다.(물론 필자가 법대생이기에 매우 주관적임을 감안하더라도^^;)


온통 한자로 가득 차고, 말도 안될 정도로 두꺼운 책들을 수도 없이 들고 다니며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어휘들을 사용하던 '법대생'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터넷엔 재미있는 '법대생 개그'들이 많이 돌아다니곤 한다.


이른바 '흔한 법대생의 대화'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흔한 법대생의 대화'는 100% 조작임을 확신한다.

사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조작이라기보단 대화자들끼리 농담에 가깝다고 봐야한다.


음란물에 관한 것은 형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으며,

기본서 + 판례집을 꼼꼼히 살펴본다해도 길어봐야 한두시간일까.

아니 무엇보다도, 법대생이 시험을 준비하며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은 역시나 어불성설.


'강제추행이랑 폭행이 먼저, 강간, 살인, 유기까지 차례대로'라는 표현에서도 허술함이 드러난다.

정확한 순서는 '살인->폭행->유기->강간->강제추행'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와 같은 법대생의 대화는 비법대생들을 겨냥한 일종의 위트에 불과하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법대생 일화' 중에는 다음과 같이 조금 부연설명이 필요한 것 또한 존재한다.


바로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고 한참을 웃었다.


저 무지막지하게 생긴 '지원림 민법강의'는 내게도 무려 세 권이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법대생들은 그 학문 특성상 매년 추가되는 판례나 변경되는 법령들 때문에 책의 교체주기가 빠르다.)


지원림 민법강의는 위 대화 내용처럼 말그대로 무지막지한 책이 분명하다.

책 두께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쉽게 되도록 내 지원림 민법강의와 동전의 비교 사진을 찍어보았다.



말그대로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위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 속 지원림 민법강의는 제7판이고

사진 속 민법강의는 그보다 더 두꺼운 제10판이다.


지원림 민법강의를 보는 사람 중 대부분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사법시험의 특성상 매년 추가되는 판례들을 거의 모두 수록해야하기에 

책의 두께는 끊임없이 늘어나기만 한다. 



1년마다 이런 책들이 한 권씩 더 추가 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법학 기본서들이 갈수록 괴물이 되어간다.



가령 왼쪽의 민법강의는 2007년 입학 후 처음으로 샀던 지원림 민법강의 제5판,

오른쪽은 2012년에 샀던 지원림 민법강의 제10판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은 둘째로 하고, 책 자체의 두께 차이가 너무나도 확연하다.


아 지서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쓴게 아닌데 쓰다보니 너무 신이났던 것 같다.

이쯤에서 '지원림 민법강의는 매우매우 두껍다' 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로 돌아가자.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는 이처럼 매우 두껍고 육중한(?) 물건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책은 흉기가 될 수 없기에 손해를 보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흉기 인정 여부'에 따라 손해를 보았다는 말은 없다.

당연한 것이다. 흉기로 인정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상 '흉기'의 개념이 등장하는 범죄는 제331조 '특수절도'와 제334조 '특수강도' 둘 뿐이다.


일반적으로 교과서는 흉기에 대하여

'흉기란 본래 사람의 살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기구 또는 용법상 사람의 살상에 이용될 수 있는 물건을 말한다.

흉기인가의 여부는 기구의 객관적 성질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살상의 위험이 없는 물건은

흉기가 아니다. (신호진 저 형법요론)'와 비슷하게 서술한다.


따라서 지원림 민법강의와 같은 책의 경우는 살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기구가 아니기에 흉기가 될 수 없고,

설령 책이 흉기의 범위에 포함된다할지라도 사안과 같은 폭행죄에서는 흉기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은 공정하게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긴 책으로 사람을 때린 행위에 대해

일반적 폭행과 동일한 평가를 받게 하지는 않는다.


형법 제261조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이용의 의미라 이해하면 편하다) 폭행한 자를 

일반 폭행죄보다 가중처벌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이란 흉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물건을 사용하면 상대방이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대판 89도1570) 하는 것이기에


지원림 민법강의는 얼마든지 특수폭행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자료 속 법대생에겐 아마도 특수폭행죄가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을까싶다.



가령 여성들이 신는 '하이힐'을 생각해보자.

하이힐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만큼 흉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이힐의 굽으로 사람을 내려친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끔찍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인천지방법원은 하이힐로 사람을 폭행한 자에게 특수폭행죄를 인정하여

하이힐이 '위험한 물건'일 수 있음을 인정했다. http://www.ytn.co.kr/_ln/0103_20090501150829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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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8일 본문의 내용에 덧붙입니다.


두번째 사례의 화자는 '기절'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대판96도2529에서 대법원은 

[실신하여 범인들이 불러온 구급차 안에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면,

외부적으로 어떤 상처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생리적 기능에 훼손을 입어 

신체에 대한 상해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즉 위 사건에서 '법대생'에게 적용될 법조는 폭행죄가 아니라 

폭행치상 혹은 상해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법 제257조 상해죄 또한 흉기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에 있어서는 본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절에 대한 제 부족함을 지적해주신 '지나가던법대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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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법대생의 흔한 대화'나 '법대생과 싸우면 안되는 이유'등의 유머 자료들을 보며

이런식으로 진지 돋는 글을 쓰게되는 것이야말로 참 법대생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학교에 얼마남지 않은 법대생으로서 아무래도 티를 조금 내고 싶었나보다. 오늘의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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