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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

[서평/공모전] 박경리 장편소설 '파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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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공모전] 박경리 장편소설 '파시' 독후감


사실 꽤 예전의 일이다.

작년 5월에 있던 공모전이니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내 생에 첫 공모전 도전이자, 첫 1위 수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마어마한 대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1등이란 것을 해본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맛보지 못했던 그 1등이라는 기분이 참 그리웠었나보다. 


특히나 당시 고시에 떨어지고 좌절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있던 내 자신에 대해

아직은 쓸만한 놈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들게 해주었던 뭐 그런 좋은 기억.





한국문인협회 통영지부에서 고 박경리 선생님의 서거 5주기 추모 독후감 공모전을 열었고

대학생의 경우에는  박경리 선생의 '파시'를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했다.


처음엔 '토지'같은 장편을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었으나

다행히도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또한 당시 우울하던 내 기분과 잘 어울리는 소설 분위기도 

내가 책에 몰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어쨌든 오랜만에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그 당시 제출 했던 독후감을 발견했는데

그냥 썩히기는 아까운 기분이 들어 블로그에 올려본다.


과거의 글을 보는 것은 항상 비슷하게도

내 얼굴을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게 만든다.

이 글 또한 비슷한데, 뭐 그래도 이 또한 내 자식과도 같은 글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내 블로그에 내 글을 올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사실 이젠 책의 등장인물이나 내용도 흐릿해져가지만

당시 가졌던 파시의 느낌만큼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각설하고 독후감 시작.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일렁이는 것은 파도뿐만이 아니다.


파시를 읽고.

 

 

의도된 비극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김약국의 딸들에서의 말마따나 젊은이들에게는 한국의 나폴리라고도 불리는도시인 통영을 주 무대로 삼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며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슬픔을 넘어 비참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결말을 맞이한다.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단 한 명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인물이 없다. 이쯤 되면 이러한 현실적인 비참함은 분명히 작가에 의해 강하게 의도되었던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소설 파시는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전쟁 중인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파시는 전쟁 중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점이 전쟁의 참혹함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방법이 되었다.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조각들로 하여 전쟁 중인 나라의 비극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소설인 것이다.

 

 

공간에 대한 단상 - 벗어날 수 없는 총성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부산, 통영, ‘이 그것이다. 이 세 공간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전쟁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라 하겠다. 모든 공간의 정()이 점차 사라져가고 대신 그 자리를 한()이 차지해간다. 어쩔 수 없는 전쟁 중 나라의 현실이다.

 

  부산은 전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공간이다. 피란민이 들끓어서 예전 같지 않다던가, 난리통에 팔도 깍쟁이들이 다 모여서 환장 속이라 눈 없으면 코 빼먹을 곳이라는 표현 등은 당시 부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산의 바다에는 아우성이 있고 통영의 바다에는 흐느낌이 있다는 응주의 말이 떠오른다.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에서의 삶이 필연적으로 비참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역시나 부산으로 떠났던 인물들은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부산이 소설의 처음부터 이미 전쟁의 영향으로 아우성치는 도시였다면, 통영은 점차 그러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첫 장면 조만섭은 피란민이 된 수옥을 보살펴주려는 목적으로 통영의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가 수옥에게 쓰는 친절한 언어들이나 수옥에게 눈독을 들이는 서영래를 향한 태도 등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수옥을 아끼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초반의 통영은 전쟁으로 인한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의 통영은 위 수옥이 결국 서영래의 첩 생활을 하게 된 것처럼, 점차 인정을 잃어가는 도시가 되어버리고 만다. 통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극적 효과는 더욱 지대했다. 아무리 정이 많고 아름다운 도시일지라도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피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작품 말미 학수 등이 징집되어 전장으로 가기 전 대기하던 곳 역시 통영이었다. 이처럼 소설은 결국은 통영 또한 전쟁으로 인해 슬픔을 품게 됐음을 강하게 말한다.

 

  수옥과 학수가 사랑의 도피처로 선택했던 말 그대로 그들만의 유토피아였다. 전쟁 중인 국토에서 떨어진 섬인만큼 전쟁의 영향이 가장 적음은 물론이며, 실제로 파시라는 소설에서 이례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훈훈하며 정겨운 분위기를 한동안 자아내기도 하였다. 수옥을 잡으러 온 서영래 일행에 대항, 승리하여 그들의 행복을 지켜내는 모습과 어머니가 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학수의 모습 등을 통해 이 섬의 이상적 모습은 더욱 더해졌다. 그러나 이 공간 또한 전쟁 중인 우리나라의 영토 중 한 곳으로서 행복해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학수는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되고, 작지만 굳건했던 그들의 이상향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이처럼 부산, 통영, 섬은 그 순서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전쟁의 영향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고 슬픔만을 간직해가는 우리나라 전체의 참상을 보여준다. 소설 말미 명화는 응주와의 결혼도 아버지 조만섭의 기대도 모두 접어둔 채 제3의 공간인 일본으로 밀항을 하게된다. 작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싶다. 결국 다른 나라로 가는 선택만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인물에 대한 단상 - 절름발이들의 향연

 

  파시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중 소설을 꿰뚫는 핵심 요소인 전쟁과 관련하여서 다양한 인물들은 다양한 대처를 하게 된다. 혹자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기도, 혹자는 유사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선애나 수옥의 경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인물이다. 선애는 남편인 문성재를 찾기 위해 지인 한 명 없는 타지를 전전하며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한다. 가는 곳마다 자신을 무시하며 냉대를 받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상황의 진전을 위해 노력한다. 수옥 또한 같다. 학수를 만나 섬으로 도망을 친 것이나, 그곳에서도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등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이 있기에 아이를 잉태함으로서 앞으로 미약하지만 희망이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학자는 이러한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분명히 인지했음에도 이를 노력으로 극복하기보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끝없이 침전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학자라는 인물이 박의사에게도 굽히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선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황 타개를 위해 노력했던 선애나 수옥도, 그렇지 않았던 학자도 모두 긍정적인 미래를 얻어내지는 못한다. 노력만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응주와 문성재의 태도 비교 또한 매우 흥미롭다. 문성재는 전형적인 건달이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과 전혀 관계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밀수를 하는 등 철저히 탐욕주의적 성향을 띄는 것이다. 통영에서 학자를 대하던 것이나 자신만을 믿고 찾아온 선애를 대하던 태도 등을 비추어보아 이러한 탐욕 및 이기주의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심한 건달이니 그런 성격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의 가장 인텔리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응주의 모습이 문성재와 여러모로 닮아있는 것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 하게 됐다. 전쟁 중의 상황임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며 두 여자 사이에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모습은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응주는 박의사와의 대화에서 나타나듯이 참전의 의사를 어느정도 갖고 있으며, 전쟁에 불참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소 섞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등의 사태 인식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제의식은 결국 인식으로만 그치고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단지 사랑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전부이다. 응주의 이러한 태도는 당시 인텔리층의 이기적인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건달인 문성재와 비교해서 그 어떤 우위도 찾아보기 힘들다. 서민들과 똑같은 전쟁을 겪고 있지만 인텔리에겐 그 총성이 들리지 않는 듯하다. 마치 이기심과 탐욕만으로 꽉 찬 건달들처럼 말이다. 응주로 시작된 인텔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박의사에게도 비켜가지 않는다. 의사로서 사회,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박의사이지만, 그 실상은 벙어리인 딸을 무시하며 아들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는 기형적인 인물이며 나라에 대한 걱정보다는 편법을 통해 안위를 보전하기만을 바라는 추악한 한계를 여실히 나타내주는 인물이다. 남들은 생사를 걱정하는 전시에 이들은 혼사만을 걱정한다. 도저히 곱게 바라볼 수 없다.

 

  이들과는 별개로 서울댁은 조금 특이한 성격의 인물로 보인다. 당시 시대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의 부당함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수옥을 첩으로 팔아넘긴 것이라던가, 심지어는 자기 자신 또한 자식을 못 낳아서 무시당한다고 여기는 등 당시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표현한다. 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려서 이러한 성격은 더욱 뚜렷해진다. 전쟁으로 인해 남자가 귀하다는 이유로 이미 결혼까지 했다고 하는 선애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 등은 너무나도 매정하기 그지없다.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인권 같은 것은 한 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전쟁이라는 사회 문제 외에도 여성작가로서 반드시 내고 싶었던, 아니 내야만 했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의 어딘지 모르게 탁한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불어 이러한 서울댁의 목소리는 작품이 더욱 서글픈 현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글을 마치며 - 파시(波時)의 파시(波市)

 

  파시라는 제목은 많은 것들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공간들 통영, 부산, 섬은 모두 어업을 주로 하는 파도의 도시이며(波市), 이 소설이 진행되는 시기는 나라의 운명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때(波時)였다. 어시장이라는 본래 의미의 제목은 위와 같은 다중적인 해석이 더해져 그 느낌이 더욱 강하게 살아난다. 소설 제목 파시는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는 어시장이 아닌 죽은 고기와 비린내로 가득 찬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소설은 끊임없이 말한다. 그물에 걸려 뒤엉키고 썩어가는 것은 고기들뿐만이 아니라고. 사람들 역시 시대의 흐름이라는 그물에 걸려 서로 뒤엉키며 악취를 풍기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그물 속에 있는 고기는 아무리 수옥이나 선애처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도 그 그물을 벗어날 수 없으며, 모두 그저 비참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화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그물. 소설 파시는 이러한 숙명적 비참함을 그리고 있다.

 

  ‘백인은 휘파람을 불고, 우리는 개미떼처럼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간다는 응주의 대사가 떠오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함께 비극적인 삶을 겪는 마치 원치 않게 그물에 걸린 고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다시금 시대의 파도가 서서히 일렁이고 있다. 파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흐름이 한시라도 빨리 잠잠해지기를, 내가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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