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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

[서평/파계재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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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파계재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떠올리며'


   


- 언제나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쇠사슬들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 생각했던 법정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변호사와 검사 간의 격한 대립으로 공기까지 날카로워지며 모두 숨죽이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는, 그것은 하나의 ‘전투’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재판은 말 그대로 ‘극’ 속에만 존재함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최근 시중에 나오는 각종 영화, 책, 드라마 등을 통틀어서 우리나라의 재판 모습을 가장 유사하게 나타낸 책이 바로 ‘파계재판’이 아닌가 싶다. 참 씁쓸한 발언이다. 1960년대의,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의 재판 모습에서 현재 우리나라 재판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전투라기보다는 ‘탁구’에 가깝다. ‘핑퐁’을 반복하며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좌우로 독자를 흔든다. 사실관계에 대한 탐구가 실제 재판과 정말 유사하다. 물론 본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60년인 만큼, 현재라면 더 많고 더 확실한 증거들이 있었겠지만 그러한 사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법정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뿐만 아니라 책을 번역한 번역자 역시 정말 많은 공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법정 속에서 독자는 마치 탁구대 가운데에서 양 측으로 튀는 탁구공을 지켜보는 심판이 된 마냥 이 쪽의 생각과 저 쪽의 생각을 해야 한다. 즐거운 일이다.





  본 책의 화자는 ‘기자’이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다. 전지적 작가이거나 재판에 참여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입장이 아닌 양 측의 주장을 모두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를테면 독자와도 같은 입장에 있는 화자이기 때문이다. 법정 소설이라는 본 책의 특징상 거의 모든 사건은 법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사건의 전개가 자칫 느리거나 따분해질 우려가 있었는데, 작가는 화자를 기자로 설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양 측 모두의 입장을 들어보며 끝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어 놓았다. 



  본 책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각 증인에 따라 달라지는 책 전체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형사 재판이라는 소재가 뿜는 분위기는 각 증인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하게 된다. 첫 번째 증인의 등장에는 한 가지 소재에서 다방면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말 그대로 추리, 법정 소설적 면모가 십분 발휘되었다면 세 번째 증인의 등장에선 소설이 아닌 작가의 개인적 경제관을 피력하는 에세이를 읽는 듯 하는 느낌을 받을 만큼 정교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법정이라는 곳으로 소설의 배경이 한정되어있음에도 그처럼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정말 뛰어난 센스가 돋보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파계재판’이 내게 준 ‘파괴력’은 강렬했다. 독서를 마치고 책을 덮었을 때가 돼서야 눈에 들어온 겉표지의 양 손 일러스트는 정말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온갖 고난을 다 겪은 듯 보이는 손과 그 손에 채워진, 그러나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쇠사슬. 파계재판의 내용과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질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쇠사슬을 볼 수 있게 된 나로서는 더욱 더 이 책으로 인해서 느낀 바가 크다. 분명히 실존하는, 그러나 눈을 크게 뜨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이 세상의 여러 쇠사슬을 생각하며 그리고 그러한 쇠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누군가들을 생각하며 파계재판에 대한 짧은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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